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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선과 세로선 틈으로 새어 나오는 것

장혜정

이것은 마치 맨손으로 모래를 움켜쥐려는 노력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우리를 존재케 하는 절대적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불변하는 신념을 소유할 수 있을 거라는, 또는 모든 것이 균등하게 조화로운 중성적 화면을 구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같은 것 말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새로 모래를 집어 올려 다시 쥐었다 펼치기를 반복하면서 얻게 되는 것이 있다. 하나는 이 모래를 온전히 쥐는 것이 영영 불가능하다는 깨달음. 그리고 다른 하나는 흘러내리는 모래가 손가락 사이를 스치며 남기는 감각이다. 

최혜경이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불완전함을 전제로 하는 노력의 연속 속에서 가변적이거나 찰나적으로 감각되는 의미들이다. 이것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대체로 손에 잡히거나 눈에 띄거나 단단한 말로 표현되기 어렵다. 작가의 작업은 삶과 미술 (특히 최근 전시 ⟪가능 세계⟫의 경우) 속에서 끊임없이 시도되는 절대적 가치나 믿음에 대한 추구, 그러나 그것이 끝내 안정적이거나 완결된 경계 속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부정되고 사라져 버리는 반복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의심과 불안함에서 출발한다. 그 의심을 토대로 가치 추구 과정에서 역으로 누락되거나 무시된 수많은 감각을 다시 끌어올리고, 완결성 또는 영속성이 오히려 가변적인 상태로 발현되고 인지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가능세계⟫(2018)에서 최혜경은 미술사 속에서 한때 가장 견고한 구조/이미지로 받아들여졌던 “그리드(grid)”를 다시 불러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 안에서 인식되는 다양하지만 불확실한 의미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최혜경에게 그 모든 것을 거부한 자기지시적(self-referential) 그리드는 불편한 존재였을 수 있다. (그리드를 포괄하는) 기하학의 절대적 권력은 원근법이 체계화된 15세기에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술가들은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평면에 옮기기 위하여 그리드 구조에 들여오게 되었는데, 보이는 보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의도를 가진 듯한 원근법을 따른 회화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처럼 자리 잡았다. 그러나 실상 원근법적 그림은 많은 것들이 지워진 그림이다. 주체와 사물의 시각적 거리를 도식화한 원근법의 격자 사이로 삶 속에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들과 이야기들이 점차 빠져나가게 되었고, 축척 되는 시간 속에서 결국 그것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리고 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잠재되어 있던 그리드는 마치 오랜 시간 탐구해온 평면에 대한 완전무결한 결론인 듯 표면으로 떠올랐다.

작가는 그렇게 화면을 지배한 (모더니스트의) 그리드가 놓쳐버린 이야기와 감각, 공간과 물질성 등이 다시 가로와 세로의 격자 틈을 통해 새어 나와 만들어지는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한다. 그러기 위해 화면에 이물감 없이 그어지거나 그려졌던 가로와 세로 선들은 아크릴, 종이, 나무 등의 몸을 부여받고, 붙어있던 캔버스나 벽에서 따로 떨어져 독립적으로 세워지거나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꾸며 서로 중첩되고 투영하기도 한다. 특히 레이저 컷팅으로 출력된 종이 격자를 활용한 일련의 작업 ⟨Grid on Grid⟩ 시리즈는, 종이로 만들어진 격자 구조를 벽 또는 캔버스에 납작하게 붙인 채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린 후 떼어내고, 그 흔적 위에 다시 어긋나게 얹혀 놓으며 평면과 입체 사이를 유연하게 오간다. 또한 거울을 아크릴로 만들어진 입체 그리드의 바닥으로 대체해버리거나, 공간 안에 바닥과 유사하게 놓아 공간을 크게 비추도록 하며 가로와 세로 선이 왜곡되고 확장되는 세계를 만들어 낸다. 작가는 이렇게 평면에 박힌 듯 혹은 평면 그 자체인 듯 존재했던 그리드를 “낯설게” 제시하면서 사이사이에 공기가 흐르게 만들고, 공간을 점유하고, 신체를 움직여서 경험하도록 했다. 하지만 함께 전시를 구성한 다른 작업 ⟨가능세계⟩(2018), ⟨Fractions⟩(2018) 등에서 제시/활용된 그리드는 충분히 낯설지 못한 아쉬움이 남겨졌음을 묵과할 수는 없다. 패턴화 되는 것이 당연할 만큼 단순한 시각적 구조를 기본으로 삼으면서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창조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시도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미술사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스스로 자유롭고자 고안된 그리드는 동시에 감옥으로 작용하며 표현의 방식에 있어서 극히 제한적이라는 모순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그리드의 양가성(ambivalence), 즉 표현적 한계에서 최혜경 역시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시 그가 만들어낸 종이 그리드로 돌아가 보면, 작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징적인 구조를 다시 전시장으로 가져옴으로써 되찾아오고자 했던 감각이 공간 안에 흐르도록 기능함이 보인다. 그가 재구현한 그리드는 반듯했던 본래의 구조는 희미하게 흔적처럼 남겨진, 단단하게 붙들고 있던 견고한 이음새들은 허술해져 후드득 떨어져 버릴 듯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는, 시작인지 끝인지 알 수 없는 선들의 짜임이다. 더는 수직과 수평이라고 부를 수도 없이 유기적으로 변형된 구조는 본래의 단단한 그리드를 지워버렸다. 최초의 격자 모양새는 바닷가 모래 위에 써진 글씨처럼 스프레이 페인트나 색 파우더 틈에 위태롭게 남아있다. 이는 더이상 정답을 가진 듯 확신에 찬 평면이 아닌, 미완의 구조 속에서 이리저리 변형되며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해 온 그리드의 개념과 더 나아가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또 다른 가치들에 대해 의심해 보게 하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결국 단단한 격자가 느슨해지고 비틀렸을 때, 비로소 작가가 재현하고자 했던 의미들이 그 틈으로 새어 나오게 된다. 따라서 최혜경의 그리드는 시작과 끝이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 유입과 유출이 자유로운 망(網) 또는 체에 가까울 수 있다. 이와 같은 헐거운 격자는 그의 2017년 작업 ⟨Black Drawing – Figures⟩에서도 발견된다. 검은 펜으로 빽빽이 칠한 화면에 실크사로 수놓인 사각형들은 실이라는 물질에서 전달되는 부드러움과 유연함, 그리고 완성된 형태를 계획하지 않고 수정되고 겹쳐짐을 자유롭게 반복된 과정을 통해 쉬이 늘어나고 당겨질 수 있는 망을 떠오르게 한다. 사각형을 기본 모듈로 삼지만 제각기 다른 길이로 된 4개의 면과 직각을 유지하지 않는 모서리들은 전개도와 유사하면서도 이어 붙일 대응변을 찾을 수 없다. 대신 여기서 감각되는 것은 재료의 물질성과 증감 상태에 놓인 듯한 임시성이며, 작가는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끊임없는 변화의 터널을 통과하는 삶을 특성을 포착하려 시도했다. 따라서 최혜경이 긋는 가로 선과 세로 선은 오차범위를 무시하고 왜곡, 변형될 때 그 기능을 효과적으로 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느슨하고 유연한 망은 곧 다시 흘려보낼 것을 전제로 이성과 감성을 걸러내고, 흩어진 가치들을 한데 모아 가두고, 입체와 평면을 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태롭고 임시적인 변주의 과정을 통해 여전히 손에 쥘 수는 없으나 감각되는 세계가 다양한 방식으로 걸러지고 다시 새어 나갈 것을 예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