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온러브
‘왜 우리의 몸은 피부에서 끝나야 하는가?’라는 도나 해러웨이의 질문은 개인이 피부를 넘어 존재할 수 있는지, 다른 존재의 피부 안으로 스며들어 그 내부에 머물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질문을 사랑에 관한 것으로 바꾸어 본다면, ‘사랑하는 존재 간에 육체를 넘어 무언가 전달되는가? 그리고 그것은 존재의 내면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하는가?’라는 질문이 될 것이다.
이온은 비물질에 가까운 미세한 입자로 양이나 음의 전기를 지닌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치 작은 이온들이 대기를 가득 채우고 천천히 움직이는 상상을 해본다. 어떤 이온이 피부에 닿으리라. 피부를 덮고 있는 수많은 모공을 통과해 피부 안으로 들어오리라 상상해 본다. 피부는 몸을 한 덩어리로 꽉 묶어 봉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구멍 나고 열려 있다. 열려 있기에 쉽게 감염되고 찢어지고 상처 입기도 한다. 하지만 피부의 투과되는 성질은 이온과 같은 다른 존재를 몸 안으로 끌어안을 수 있게 한다. 비로소 그 깊은 곳에서 낯선 물질과 전자를 주고받으며 스스로 변화하는 미세하지만, 진정한 작용이 일어난다.
작가의 내면을 비추는 창이자 외부를 향해 이미지를 펼쳐 보이는 회화 표면은 피부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왔다. 얇은 막 안쪽에 내가 있고 밖에 세계가 있다. 다른 존재를 만났을 때 피부가 상기되고, 소름 돋고, 팽팽해지고, 싸늘해지고, 습해지듯, 세계와 접촉할 때 일어나는 마음의 동요가 회화 표면에 그려진다.
<이온 러브>는 캔버스와 프레임 없이 망사천에 안착된 물감 막을 공간 걸어 보여주는 회화 설치 전시이다. 화면의 이미지는 결정으로 응고되고, 흐르고, 방울지고, 분사되는 물감의 이미지로 고체, 액체, 빛이라는 물질과 비물질 상태 모두로 드러나는 색의 변화무쌍한 상태를 보여준다. 색 입자가 증발, 응결, 응고하는 이미지로 이온의 느낌을 형상화한다. 이온이 피부 안으로 스미듯, 물감이 발산하는 색도 회화의 표면에서 떨어져 나가 대기를 가로질러 보는 이의 몸속 세포에 닿는다고 생각해 본다.
회화는 마치 피부 같은 연약한 표면이다. 내부의 내가 밖을 향해, 외부의 세계가 안을 향해 맞붙어 요동친다. 연약함은 쉽게 다치거나 주저하는 태도와 연관되는 열등한 가치가 아닌 이질적인 것을 포용하는 열림이다. 피부와 회화는 이 열림을 유지하기 위해 연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회화를 바라볼 때 색 입자가 모공을 통과하며 휙 일으키는 바람에 간지러운 듯한, 몸속 세포에 닿아 서로 부둥켜안고 조용히 진동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눈으로 인지한 색이 나에게 다가와 피부에 스미고 피부를 떨리게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회화적 감각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용은 다름 아닌 사랑이 발생할 때 일어나는 궁극적인 작용과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