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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면 돌아올 때 『가정생활』 좀 사다줘요.”1)

김현주(독립큐레이터)

최혜경의 <7×5SECRETS>를 보고 당황했다. 가로 7칸, 세로 5칸 총 35칸 구성의 다이어리를 그린 <7×5SECRETS>는 전작(前作)들과 2019년 작업 계획서상에서도 돌발적인 듯 보였고 이 작품 그 자체의 시각적 이미지도 낯설었다. 무엇보다 <7×5SECRETS>는 내 어떤 기억을 강렬하게 소환시켰다. 이 작품은 소녀 취향에 따라오는 수줍다고 일컫고 연약하다고 여기는 ‘그때’와 마주하게 만든다. 사전에서 걸리쉬(Girlish)는 1. 소녀의; 소녀 시절의; 소녀에게 어울리는, 소녀다운, 천진난만한. 2. [소년이] 계집애 같은, 수줍음을 타는, 연약한의 의미를 갖는다. 소녀는 여성의 발육에서 성인 이전의 상태를 짚으며 소녀의 형용사형은 이 상태에서 파생한다고 여기는 ‘-다운’, ‘-답다’와 같이 소녀라는 특정 명사가 지닌 성질을 가치로 수반할 것을 한정한다. 또한 남성의 발육에서 성인 이전의 상태인 소년이 지닌 상황에 소녀의 소위 부정적 형질을 투영하여 이를 버리거나 벗어나야할 가치로 치부한다. 이런 경우 남성, 여성, 소년, 소녀 또는 남성, 소년, 여성, 소녀는 격의 나열이 아니라 자격과 권한의 높고 낮음이 된다. 이 사이 사이 채 놓지 못한 여러 격이 더 있음을 모두 나열하지는 않겠다. <7×5SECRETS> 앞에서 기억은 작아져서 더 이상 입을 수 없어진 분홍 드레스, 가장 친근한 벗과 공유했던 자물쇠 잠긴 일기장처럼 ‘그때’이기에 ‘지금’ 참 당황스럽게 한다. 

난처함에 의지처가 있을까 생각해 보다가 최혜경과 작품의 외현은 다르나 셀피(셀프 사진)를 주요 소재로 다루는 오드리 월렌(Audrey Wollen)의 발언을 읽었던 게 생각났다. 젠더학 연구자인 여경희의 글을 인용해 보면 발언은 다음과 같다. ‘스스로를 ‘여성(woman)’이 아닌 ‘소녀(girl)’로 굳이 지칭하는 이유에 대해 월렌은 이렇게 대답한다. “가부장제가 나를, 그리고 여성을 끊임없이 소녀화(infantilize)하려는 시도를 굳이 거부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영원히 소녀인 상태로 살아야 하는 것이 여성의 삶이라면, 어떻게 그것을 나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할 것인가? 어떻게 그것을 우리의 정치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2)월렌은 작업에서 사진 프레임 상에서는 벨라스케스의 비너스의 구도를 패러디하지만 프레임 내부에서는 거울을 마주하는 비너스 대신 랩탑을 거울 자리에 대체하고 랩탑 카메라를 이용하여 자신의 몸을 영상으로 응시하다가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사진으로 담았다. 월렌은 “내가 나를 예뻐하고자 하는 욕망이 그들의 욕망에 선행하는 그날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셀피를 찍어야만 한다.”3)고 피력한다. 이처럼 월렌은 사회가 가둔 ‘소녀’를 자신의 프레임으로 전치한다. 그러나 월렌이 소녀 취향에서 ‘소녀’를 중심화해서 사회적 ‘취향’의 민낯을 드러낸다면 최혜경은 다이어리의 소녀 ‘취향’에 관계하는 ‘감각’을 문제시한다는 차이점을 보인다.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소녀들은 글로만 쓸 수 있는 내용을 왜 온갖 색을 띈 펜과 장식으로 꾸미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 질문이 ‘언어의 상대개념으로서 감각적인 것이 무엇을 전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연이어짐을 밝힌다.4)첫 번째 질문이 다수의 것이라면 두 번째 질문은 작가에게 특수의 문제가 된다. 

<7×5SECRETS>의 다이어리는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브루스 채트윈 등의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사용한 전설적인 노트북을 소생시켰다는 몰스킨 다이어리가 표방하는 창의적 영감을 기록하는 물질적 지지체로 전이되지 못하며(않으며) 1976년 창립하여 기업용, 대학용 다이어리의 대명사가 된 국내 양지 다이어리의 실용적 기능으로도 향하지 않는다. 현재 이 이미지의 화면은 흔히 꾸밈, 치장, 장식이라 불리는 다이어리의 부수적인 주변을 공들여 ‘재현’한다. 여기서 꾸밈, 치장, 장식은 표현의 여러 갈래임이 분명함에도 대범주에서는 여성적이며, 구체적으로는 소녀 취향으로 종종 격하된다. 꾸밈, 치장, 장식은 불필요한 부가물이 되고 조형의 요소로 오롯하지 못하는 대신 여성적이고 공예적이라는 수사로 성급히 포장된다. 너른 색면 분할, 활달한 붓질, 성긴 콜라주가 남성 추상 미술의 ‘표현’ 요소가 될 때 추상과 표현이라는 공통의 행위에도 왜 여성추상미술은 장식이 되고 공예적이라고 제한되는가. 굳이 <7×5SECRETS>의 공들인 ‘재현’을 거론하는 이유는 재현이 일반적으로 세상의 모사일 때 최혜경의 재현은 추상을, 추상 미술을 재현한다는 차이에서 비롯한다. 

여성추상미술에 대한 고민은 작가를 만나며 촉발되었다. 헬렌 플랑켄탈러, 리 크래스너, 일레인 드 쿠닝의 이름은 추상미술의 변방이나 로버트 마더웰, 잭슨 폴락, 윌렘 드 쿠닝 등의 파트너와 동행하지 않고서는 거론의 기회가 좀처럼 없다. 여성추상미술이 사교 모임의 구색맞추기도 아닐텐데 이들은 별자리로도, 낱낱의 호명으로도 역사에 제대로 등재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최혜경이 미술을, 추상을, 여성을 또박또박 이어 붙여 여성추상미술로 문제화할 때 사조, 언어, 전능의 대로(大路)에서 경로는 이탈하여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와 같은 네비게이션의 반복 경고음처럼 ‘다른 방식으로 감각하세요, 다른 방식으로 감각하세요, 다른 방식으로 감각하세요’를 간곡히 요청한다. 따라서 <7×5SECRETS>는 낯설고 문제적이다. <7×5SECRETS>와 여타 작품을 묶어 작품 세계의 외연으로 글이 쉽사리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이 작품을 너무 쉽게 바라보거나 너무 어렵게 생각할까봐서다. 그렇고 그런 소녀 취향으로 팽개쳐버릴 이들이 예측되기 때문이고 한편 이미 학습된 방식으로 작품을 분석할 감식자들의 성급함을 경계하고 싶기 때문이다.  

만약 표면적 낯설음이 잦아들었다면 이 작품이 전하는 감각으로 인해 즐거워지기를 바라본다. 최혜경은 구상회화와 추상회화를 환영 회화와 추상회화로 명명하면서 환영 회화가 취하는 수직적 깊이감을 추상회화에서도 시도 혹은 극복해보려고 노력한다. 포토샵의 레이어와 같은 기술적 논리가 그림그리기의 방식에도 가능한가를 탐문하며 <7×5SECRETS>에도 트릭을 심어놓았다. 하루를 의미하는 다이어리의 그리드는 마카펜, 형광펜, 스티커, 비즈, 포스트잇 등의 필기구와 문구류로 덧칠해지거나 덧붙여진다. 물론 이 속칭 소녀 취향 모두는 연마한 그리기의 노련함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또한 이 작품에는 추상 미술 대가의 기법과 콘크리트 표면 처리와 같은 건축 인테리어의 기법이 고약하게 병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너머, 수직적 깊이의 심층에는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의 시 〈거울(Mirror)〉의 구절이 비명처럼 놓여 있다. ‘나는 은빛이며 정확하다. 나는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다. 내가 무엇을 보든지 나는 즉시 받아들인다.(I am silver and exact. I have no preconceptions. Whatever I see, I swallow immediately.)’는 시구가 냉담하게 깔려있다. 지독한 죽음을 맞이했던 시인의 삶을 거듭 소환하는 게 불편하지만 여기서는 알려야겠다. 실비아 플라스는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죽음을 맞았다. <7×5SECRETS>의 몽글몽글함은 추상 미술을 정확히, 즉시 받아들이면서도 그 정확함이 놀랍게 여성추상미술로 라벨갈이되는 구질구질함을 비춘다. 

“괜찮으면 돌아올 때 『가정생활』 좀 사다줘요.” 훌리오 꼬르따사르의 단편소설 「시내버스」의 첫 문장은 어느 부인이 여성 주인공에게 잡지를 당부하는 화법으로 시작한다. 소설이 시작되는 시점서부터 주부 대상 잡지의 넓고 옅은 통속이 소설의 내면까지 깊이 관통했겠지 짐작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시내버스에서 차표를 끊으며 속으로 노래를 부른다. ‘끊어라, 끊어라, 차장아, 파랑차표, 분홍차표 끊어라. 노래해라, 노래해라, 뭐든지 노래해라, 돈을 셀 때는.’5)파랑차표, 분홍차표를 읊는 재잘거림은 유치하고 소녀답다고 느낀다. 그래서 「시내버스」가 남성, 소년, 여성, 소녀의 세계에서 여성, 소녀 한정의 취향과 감각의 몽글몽글함을 다루었냐면 전혀. 이 소설은 버스 안에서 주인공을 노려보는 눈길과 굉음을 내며 내달리는 버스로 인해 현실에서 비현실로 진입한다. “괜찮으면 돌아올 때 『가정생활』 좀 사다줘요.”라는 문장에는 낮춰볼 것이나 비웃음거리가 없다. 가로 7칸, 세로 5칸 총 35칸 구성의 다이어리의 치장에도 비웃음거리는 없다. 여기에는 언어 대신, 작가의 표현대로 ‘감각적인 것’이 무엇을 전달하는지에 대한 고민거리가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문제는 선입견이다.  


1) 훌리오 꼬르따사르, 「시내버스」, 『드러누운 밤』, 박병규 옮김, 창비, 2017, p. 53.

2) 여경희, 「셀피 페미니즘: 소녀취향, 그 핑크빛 코쿤에 관하여」, 《보스토크》, 2016년 11-12월호, VOL. 01, p. 36.

3) 여경희, p. 37.

4) 최혜경의 <7×5SECRETS> 작업노트에서 발췌함.

5) 꼬르따사르, p.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