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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과 우연-변화의 파노라마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모든 예술에서 최종적인 추상적 표현으로 남게 되는 것은 수(數)이다.1)

수학자도 화가나 시인들처럼 패턴을 만든다. (중략) 화가는 형태와 색깔로, 시인은 언어로 패턴을 만든다. (중략) 화가나 시인과 마찬가지로 수학자가 만드는 패턴 또한 반드시 아름다워야 한다. 그러려면 색상이나 언어처럼 아이디어 역시 조화롭게 연결되어야 한다.2)

기하학이나 수학에 근거한 추상화의 방법을 실험하는 최혜경의 개인전 《추상기계(β)》(2025)에 전시된 작품들은 “구(sphere)의 표면을 기하학적으로 변형하기 위해 고안된 연산 시스템”에 근거한다. 원-구라는 폐쇄적 운동과 파동이라는 확산적 운동 사이에 일어나는 전환 관계는 최혜경의 작품에서 꽤 즉각적으로 확인된다. 작가는 “구면 기하학을 기반으로 생성된 곡면 형상”을 자신이 만든 “복소함수와 알고리즘”으로 확장해 그 결과를 인쇄하고, 콜라주하고, 그렸다. 일상의 삼차원적인 공간이 아닌 공간에 “변형된 구체”를 담아 내기 위해 수학적-논리적 시스템을 만든 뒤 변수를 설정하고, 그에 따른 형상과 색을 포함한 시각적 요소의 변화를 포착하는 과정은 견고한 구조를 고수하면서도 조금은 도발적인 자유를 허용한다. 작가 스스로 강박적이라 느낄 정도의 완전무결함을 추구하는 작업 태도, 이미지 탐구를 위한 노력이 생성하는 과정과 결과는 ⟨휘발하는 정의⟩(2025)3), ⟨(β) 연구⟩(2025) 시리즈, ⟨우울한 오류⟩(2025) 시리즈에 고스란히 담겼다. ⟨셀(Cells)⟩ 시리즈(2023)에서는 작가가 설정한 조건에 따라 달라진 삼각함수의 모양-파동이 그려졌다. 자신이 대입하는 좌표값에 따라 이미지―그래프의 형상―이 바뀌는 상황 그 자체를 즐기는 최혜경은 연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 예상하지 못한 “출력값”, 시스템 사이의 “충돌”에서 산출된 이미지까지 작업에 담았다. 컴퓨터 프로그래밍(Computer Programming) 과정에서 코딩(coding)으로 구현이 안 될 때도 있었고, 수학적 개념과 3D 모델링 프로그램(3D Modeling Programming) 사이의 간극 때문에 생기는 오류도 있었다.4)

구는 “분자, 세포, 개체”처럼 “경계를 가진 존재”이자 작가 자신의 상징이다.5) 구는 오래전부터 완전을 상징해 왔다. 작가는 하나의 점에서 시작해 동일한 거리에 놓인 모든 점으로 구성된 원, 정돈되고 완결적인 형태인 구에 자신을 대입했다. 고대 그리스의 크세노파네스(Xenophanes)는 하나의 무한 구체를 유일신으로 내세웠고, 플라톤(Plato)에게 구는 “표면의 어떤 지점에서도 중심과 등거리를 이루기 때문에 가장 완벽하고 가장 균일한 형태를 지닌 도형”이었다.6) 하지만 작가는 완벽만큼 변화를 원했다. 고정불변하는 존재에게는 압도적인 평온과 안정이 뒤따르지만, 동시에 정지만 남을 위험이 있다. 그래서 작가는 비예측성까지 흡수할 수밖에 없었다. 파열된 이미지도 내적, 외적 세계의 일부이다. 그렇게 닫힌 형상은 열리고, 안과 밖이 겹치며, 춤을 추듯 생동하게 되었다.

최혜경의 모든 작업은 지식과 진리 탐구의 욕망, 논리적 인과 관계에 대한 흥미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무엇보다 작가는 수식을 익히고 응용하는 시간 그 자체를 즐긴다. 그것이 수식이든, 예술이든, 삶이든, 작가는 진리에 집중해 왔다. 일부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듯 표현 방식과 진행 과정의 엄격성이 직접적으로 드러날 정도로 작업을 행하는 방식이나 심미적 기준도 선명하다. 선천적으로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것을 선호하는 작가의 기질이 반영된 덕분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절대적인 표준과 보편이 불가능한 것임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진리마저도 변화한다는 또 하나의 진리를 잊지 않는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예측 불가능성은 점차 작가에게 자유의 희열을 가져왔다. 결과적으로 작가에게 오류는 부정적인 게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의 결과물을 산출하는 자원이 되었다. 예상할 수 없음이라는 불안정함과 기대가 뒤엉키며 공존하는 오묘한 순간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고 심미적인 무언가이다. 

이와 같은 복잡한 양가성은 제작 방식에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작가가 선택한 제작 방법 중 판화는 수식에 따른 결과를 오차 없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표현의 효율성 면에서 적합했다. 콜라주의 경우 이중적인데, 오려 붙이기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설령 작가의 의도를 벗어난 것이라 하더라도―온전히 보여주는 좋은 방법이자 작가의 손노동, 행위를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작용한 것이다. 예측하지 못했던 이미지를 선택했지만, 파열되는 형상조차도 깨끗하게 오려 붙인 ⟨우울한 오류⟩는 선명한 경계를 숨기지 않는다. ⟨셀⟩에서는 삼각함수를 변형해 만든 형상들이 오차 없이 그려졌고, 색들은 그 안을 채웠다. 그러나 형상들 사이에 미세한 틈이 보인다. 얼핏 보면 이미지가 어긋나게 인쇄된 것 같지만, 그조차 계산된 것인 ⟨(β) 연구⟩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게, 작가가 정돈하려고 애쓰면서도 흐트러뜨리려고 하는 공간 속 형상들이 넘실거린다. 

인간은 문명 이전부터 수학적 사고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학은 물리적인 현실 세계에 원래부터 있던 게 아니라 인간의 지성이 만들어낸 것이고 수식과 공식, 법칙과 논리로 이뤄지기 때문에 순수하게 지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영역으로 여겨졌다. 추상적이고 개념적이다. 또한 수학은 그 어떤 영역보다 명징한 확실성, 명확성을 갖는다고 믿어졌다. 그런데 수학적 증명과 추론이 획득하는 논리적인 필연성, 추론의 확정성은 그 자체에 근거한다기보다 규범적인 성격을 갖는다. 즉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적극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수학은 언제든 새로운 것이나 변환 관계를 끌어낼 수 있다. 창조적일 수 있다.7) 또한 수학에는 오직 정답과 오답만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가장 잘 알려진 십진법과 이진법의 사례처럼 어떤 전제, 논리-체계를 적용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도 마찬가지다. 작가 역시 이의를 제기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수학적 명제나 공식, 나아가 규범, 규칙, 진리라고 믿어지는 것들에게는 언제나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가정과 그로 인해 더 아름다운 무언가가 생성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예술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캔버스 위를 배회하는, 구의 표면이라는 평면적이면서도 입체적인, 물리적이면서도 환영적인 이미지는 끝없이 변형되고, 생성된다. 미려한 변수와 시행착오는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의 화폭 위에 서로 중요하게 관계 맺으며 존재하는 형태-이미지들은 수학적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규칙적이지 않은 숫자로 다뤄진다.8) 나아가 작가의 상징인 원-구가 그렇듯 작가를 포함한 인간, 즉 창작의 주체이자 탐구의 대상인 인간도 끝없이 자기 자신(정체성)을 형성하며 스스로 해체해 변화하는, 과정 중에 위치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결국 최혜경의 작업은 수학에 바탕을 둔 지적 실험, 작가로서의 창작, 자기 내면에 대한 성찰 모두를 담아낸다. 

작가는 고정된 시스템이 고착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창작을 위해서든, 세계 속 한 명의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서든, 생성과 해체, 안정과 변화의 공존-넘나듦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해체하기만 할 수는 없다. 조형 요소이자 작가의 상징물로서 끝없이 변용되는 형상들을 보면 끝없이 관계 맺고, 갈등하고, 자기 자신을 재단하면서도 변화를 꿈꾸는 주체의 내면과 심리, 감정이 연상된다. 그러고 보니 ⟨우울한 오류⟩에 등장하는, 베일처럼 보이는 이미지들은 신비로운 기운-영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층층이 쪼개지는 면들과 일렁이며 색의 그러데이션으로 채워진 화면은 작가 혹은 또 다른 누군가의 머릿속-마음속 같다. 

이처럼 조형적인 실험에만 집중한 추상화는 아니지만, 최혜경의 작업을 논할 때 회화의 정체성을 말하지 않을 수는 없다. 결국 공간과 형상-이미지에 관한 이야기다. 최소한 작가는 전통적인 재현 회화가 제공하는 환영적 공간을 원하지 않았다. 모더니즘 추상미술이 추구했던 평면도 아니다. 컴퓨터상에서 만들어진 가상적 공간을 인쇄해 콜라주 한 작품들의 경우―⟨우울한 오류⟩ 시리즈― 회화의 환영과는 다르나 또 다른 차원의 환영을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평면이라고 한정 짓기도 어렵다. 컴퓨터 속 공간이어서 더 무한할 수 있다. 역으로 그 어떤 추상화보다도 납작한 평면을 느끼게도 한다. 캔버스에 붙인 인쇄물이 종이와 캔버스의 경계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최혜경의 작품들은 양가성을 소유한다. 엄밀히 말해 회화가 생성하는 공간도, 컴퓨터 프로그램이 도출하는 공간도, 모두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이 역시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실 최혜경이 상상하는 것은 “어떤 사람의 생각이나 관념이 얽혀 있는 공간”이었다. 이론적 개념일 수도 있고 세계를 구성하는 각각의 존재와 이치에 관한 사고일 수도 있다. 작가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론적인 공간, 즉 추상적인 개념이 만들어낸 어떤 공간을 상상했다. 개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공간이지만 생동하는 공간이어야 했다. 그런데 동시에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마음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도 같다.9) 복잡미묘하고, 한정 짓기가 불가능한 영역이다. 

작품은 예술가의 마음-영혼인 내적 요소와 외적 요소로 이뤄진다. 감정으로 존재하는 내적 요소가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생각이 사용하는 말을 선택하듯 구체적인 것으로서 외적 요소를 활용해야 한다. “아름다운 작품은 내적 요소와 외적 요소가 조화롭게 협동한 결과이다.”10)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형태와 색채가 심리적인 효과와 정신적인 동요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정신세계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활동이자 무한한 창조”이다. 모든 존재는 내면의 깊은 속에서부터 진동한다. 인간의 감정은 “영혼의 진동으로” 구성되고, 형태와 색채, 단어로 표출된다. 그리고 작가는 자기의 내면과 조응하는 외적 형상들을 선택해 스스로를 표현했다.11) 최혜경은 평면이라는 캔버스에서 이뤄진 조형 요소들의 구성으로만 존재하는 추상화를 벗어나기 위해 비가시적인 힘과 깊이를 보여주려 했다. 추상화는 그 깊이를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원-구는 조형 요소 중 하나로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 기하학적인 도형과 추상화 속 형상은 분명히 다르다. 그것은 그려진 것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담아내야 한다. 

완벽한 공간에서 유영하는 아름다운 형상들을 상상해 본다. 기대를 벗어나는 범위의 결과도 시스템 안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완벽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안도해 본다. 동시에 얼마나 더 심미적인 오류가 발생할지 호기심이 발동한다. 예측 범위를 넘어서는 세련된 오류를 생성하고자 하는 욕구도 작동한다. 때로는 시스템까지 흔들리는 것 같아 두려워지기도 한다. 예측 가능성을 벗어난 오류 때문인지, 삶과 작업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기를 원하는 마음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작품에는 이처럼 복합적인 작가의 심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수식을 만들고 형상을 생성하며 해체할지 작가 자신도 확언할 수 없다. 놀이처럼 즐거운 일이지만 지난한 과정이기도 하다. 최혜경은 왜 그와 같은 작업을 지속하는지 자신의 안과 밖에서 끝없는 질문을 만날 것이다. 


1) 바실리 칸딘스키,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권영필(역), 2000, p. 124.

2) G. H. 하디, 『어느 수학자의 변명』, 정희성(역), 도서출판 세시, 2016, pp. 47-48.

3) ⟨휘발하는 정의⟩에서 최혜경은 자신의 작업이 원-구, 구면 기하학에 기반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 작품은 작업을 이해하는 이정표인 동시에 오독에 대한 방지책으로 보이기도 한다. 

4) 《추상기계(β)》안내문, 2025. ; 이문정과 최혜경, 작가 인터뷰, 2025년 7월 10일. ; 이문정과 최혜경, 작가 인터뷰, 2025년 8월 19일. 

5) 《추상기계(β)》안내문, 2025.

6)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파스칼의 구(球)」, 『또 다른 심문들』, 정역원, 김수진(역), ㈜민음사, p. 24. 

7) 정연준,「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과 수학교육」, 『수학교육철학연구』 제2권 제2호, pp. 72-73.

8) 바실리 칸딘스키, 2000, p. 124.

9) 이문정과 최혜경, 작가 인터뷰, 2025년 7월 10일. 

10) 바실리 칸딘스키, 2000, p. 18.

11) 임지연, 「셸링(F.W.J.Schelling)의 ‘무한한 생성’의 이념으로 본 칸딘스키(W. Kandinsky)의 추상회화」, 『기초조형학연구』, 제12권 제1호, 2011, p. 468.